일요일의 방송국은 다른 건물 같았다. 복도 불은 한 칸 건너 하나씩 켜져 있었고, 내 발소리만 쓸데없이 크게 울렸다.
나는 찌개 한 통을 들고 있었다. 뇌물이었다. 스튜디오 출입구를 지키는 곽 반장님은 눈썹이 하얀 분으로, 일요일 출입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두 번이나 지적한 뒤 통 뚜껑을 살짝 들어 봤다.
"돼지고기 들어갔나?"
"앞다릿살로요."
"이십 분 뒤에 순찰 도는데, 나는 세트 쪽은 잘 안 봐요. 눈이 침침해서."
세트 안은 어두웠다. 조리대 위 작업등 하나만 켜진 채로 왼쪽 조리대와 오른쪽 조리대가 텅 빈 얼굴로 마주 보고 있었다. 일곱 시 정각이었고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당했다, 소문이 나겠구나, 내일 기사 제목은 뭘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오른쪽 조리대 아래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칼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요."
강이현이 쪼그려 앉아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회색 맨투맨에 모자를 눌러쓴 차림이었다. 조리복을 벗으니 사람이 한 치수 줄어든 것 같았는데, 어깨는 그대로 넓어서 괜히 눈을 돌렸다.
"칼 위치도 모르면서 석 달을 출연했습니까."
"늘 변 씨가 꺼내 줬거든요."
"변 FD 손에 뭘 그렇게 쥐여 줬습니까, 대체."
나는 왼쪽 조리대에 겉옷을 던지듯 걸치고 칼집을 꺼냈다. 그리고 규칙부터 불렀다. 생각해 온 것이었다.
"첫째, 방송에선 안 봐줍니다. 둘째, 맞은편 글은 계속 쓰셔도 됩니다. 대신 셋째."
"셋째."
"제가 여기 온 건 비밀입니다. 저는 그냥 제 조리대에서 다치는 사람이 보기 싫은 겁니다."
"네. 넷째는 제가 정할게요."
그가 도마를 끌어왔다.
"별 네 개 이유는 다섯 개 받기 전엔 묻지 않기."
"약속한 적 없는데요."
"방금 했어요."

무 한 토막을 도마에 올렸다. 강이현이 칼을 쥐었다. 나는 진심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게 쥐면 그건 요리가 아니라 범행입니다."
"그럼 어떻게 쥐는데요."
"손잡이를 말고요, 날이 시작되는 데를 엄지랑 검지로. 아니, 거기 말고. 아니, 그쪽 손가락 말고요."
말로는 안 됐다. 세 번쯤 설명하다가 내가 답답해서 그의 옆으로 갔다. 그의 손등 위에 내 손을 얹고 칼을 고쳐 쥐게 했다.
"이렇게요. 왼손은 고양이 발처럼 말고, 칼이 손가락을 따라오게."
그때 알았다. 그 사람 손이 찼다. 칼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음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차가웠다. 작업등 하나 켜진 세트는 조용했고, 도마에 칼 닿는 소리가 터무니없이 크게 들렸다. 나는 분명히 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어깨가 내 팔에 닿을 듯 말 듯 해서, 내가 지금 뭘 가르치고 있었는지 자꾸 잊어버렸다.
"민혁 씨."
"네."
"귀가 빨간데요."
"작업등이 뜨겁습니다."
"여기 전구 엘이디인데요."
나는 손을 뗐다. 강이현이 혼자 칼을 내렸다. 두께가 제각각인 무 한 조각이 도마에 넘어졌다. 처음으로 다치지 않고 잘린 조각이었다. 그 사람이 그걸 집어 들고 올려다보며 웃었다. 카메라 앞에서 쓰는 웃음이 아니었다. 덜 잘 만들어진, 어딘가 어설픈 웃음이었다.
"손이 왜 이렇게 찹니까."
불쑥 물었더니 그 웃음이 살짝 멈췄다.
"그거, 다섯 번째 규칙으로 할까요."
아홉 시까지 무 두 개가 넘어갔다. 곽 반장님은 끝내 세트 쪽을 안 봤고, 통은 빈 채로 경비실 창틀에 놓여 있었다.

"이게 무입니까, 쐐기입니까."
"두꺼워야 씹는 맛이 있죠."
"씹는 맛은 고기가 합니다. 무는 국물을 합니다."
목요일, 앙숙 한 냄비 특집 첫 녹화. 카메라 여섯 대가 조리대 하나를 둘러쌌고 도 PD는 모니터 앞에서 벌써 손을 비볐다. 조리대 하나에 사람 둘을 세우니 팔꿈치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입으로는 싸우면서 손을 뻗으면 거기 국자가 있었다. 강이현이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를 밀어 넣으면 내가 때맞춰 불을 줄였다. 그는 일요일에 배운 대로 왼손을 말고 있었고, 그 손을 볼 때마다 내 귀가 또 뜨거워져서 나는 더 큰 소리로 시비를 걸었다.
"저 사람 칼질 언제 저렇게 늘었어?"
조명 스태프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강이현은 카메라를 보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혼자 연습했습니다. 무랑 좀 친해졌어요."
오세라 씨가 모니터 뒤에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을 피해 국물 간을 봤다. 소금은 처음부터 반 스푼 덜었고, 물은 한 국자 덜었다. 강이현이 옆에서 숟가락을 슬쩍 내밀었다. 맛보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그 손등을 찰싹 쳤고, 스튜디오가 뒤집어졌다.
봉금자 선생님은 그릇을 받아 들고 한참 말이 없었다.
"이거, 누가 간 봤니."
"제가요."
"그럼 이 무는 누가 썰었어."
"접니다, 선생님."
강이현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삐뚤빼뚤한 무 조각을 젓가락으로 들어 보더니 혀를 찼다.
"못났다. 근데 국물이 다 들었네. 이상하지, 둘이 싸우는 집 찌개가 맛있어."
도 PD가 모니터 앞에서 혼자 박수를 쳤다.
화요일 밤, 방송이 나갔다.
자정 전에 클립 조회수가 내 일 년 치 출연작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손등 때리는 장면은 세 가지 음악을 입고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찰싹 커플'이라는 끔찍한 이름까지 지어 줬다. 구태오 형은 소속사 볕들날 대표 전화를 받더니 나를 돌아보며 흥분해서 말했다.
"대표님이 너 다음 달 광고 얘기 나온대. 찌개 말고 라면이긴 한데."
"형, 저 지금 바빠요."
"뭐가 바빠, 뒹굴뒹굴하면서."
나는 소파에 누워 게시판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 글이 어찌나 많은지 평소 같으면 한눈에 찾던 맞은편의 글을 찾는 데 한참 걸렸다. 목요일 밤 그 자리에 있었다. 별 네 개.
"좋습니다. 다만 무는 다음에 좀 더 얇게 썰어 보겠습니다."
썰어 보겠습니다, 라니. 대놓고 저렇게.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쿠션으로 막았다.
구태오 형이 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그 사람 아직도 쓰네. 언제부터 쓴 거야, 석 달이랬나? 첫 글이 뭐였는데?"
"소금 줄이라는 거겠죠."
말은 그렇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글이 올라온 시각만 봤지 첫 글을 끝까지 읽은 적은 없었다. 처음 별 네 개를 봤을 때 나는 '이건 또 뭐야' 하고 바로 창을 닫았으니까.
형이 돌아간 뒤 혼자 게시판을 맨 끝까지 내렸다.
첫 회. 석 달 전 목요일, 첫 녹화가 있던 바로 그날 밤 열한 시 십팔 분. 방송 나가기도 닷새 전이었다. 그 글은 내 기억보다 한 줄이 길었다. 그때 나는 첫 줄만 보고 닫아 버렸던 것이다.
맞은편 님. 별 네 개.
"소금 조금만 줄이세요."
그리고 그 아래.
"오늘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 문장에는 농담이 없었다. 말꼬리를 비틀지도, 사람을 놀리지도 않았다. 석 달 치 글을 다 뒤져도 그 사람이 쓴 문장 중에 저렇게 생긴 건 하나도 없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찬 손가락이 떠올랐다. 대기실에 도시락이 다 들어온다고 내가 말했을 때 "배고파서요" 하며 귀 뒤를 긁던 손. 일요일에 무 썰다 말고 손이 왜 찬지 물었을 때 멈춘 웃음. 지난 석 달, 〈맞불 부엌〉 녹화장에서 심사가 끝나면 자기 음식을 한 입도 안 대고 내려놓던 그 사람. 그걸 나는 배우의 관리라고만 생각했었다. 재수 없다고까지 했다.
화면을 끄니 까만 유리에 멍청한 내 얼굴이 비쳤다.
이번 일요일에도 일곱 시에 세트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규칙에 따르면 나는 묻지 말아야 했다. 별 다섯 개를 받기 전까지는, 왜냐고.
그런데 저 사람.
몇 달 동안 대체 뭘 먹고 살았던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