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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4화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4화 사진 1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을 죽일 대사를 연습했다. 물론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어디까지 들었어요. 이 여덟 글자. 곽 형 밴 뒷자리에서, 분장 의자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입속으로 돌렸다. 이번 건 이상하게 잘 외워졌다. 톤도 정했다. 소리 지르면 지는 거다. 낮고 차갑게, 형사처럼.

"너 오늘 왜 그러냐." 곽 형이 소시지를 씹으며 백미러로 나를 봤다. "얼굴이 누구 죽이러 가는 애 같아."

"대사 연습이에요."

"드디어 34쪽이 되냐?"

"다른 쪽이요."

밤 열 시 반에 12층에 내렸다. 복도 등은 여전히 반쯤 나가 있었고 자전거도 여전히 그 자리였다. 내 문을 지나쳤다. 여덟 발자국. 그 사람 다리로는 여섯 발자국.

1208호 앞에 섰다. 문에는 이름이 없었다. 불빛이 문 아래로 가늘게 새어 나왔다. 있다.

오른손을 올렸다. 손가락을 말아 쥐고, 문에서 한 뼘 떨어진 자리에서.

그런데 손이 거기서 안 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쪽지 한 장 붙일 때는 잘만 왔다 갔다 하던 손이다. 나는 그 자세로 서서 머릿속으로 봄부터의 일을 또 돌렸다. 댓글을 소리 내어 읽은 밤. 죄송합니다 연습. 저 안에 있는 사람은 그걸 전부 알 수도 있고, 내가 이 문을 두드리면 진짜로 알게 된다. 물어보는 순간 대답이 나오니까.

복도 어디선가 텔레비전 웃음소리가 났다. 손이 슬슬 저렸다. 몇 분이나 서 있었는지 모른다.

철컥.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나는 주먹을 든 채로 그 사람 코앞에 서 있었다.

도건우는 내 주먹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집에서 입는 늘어난 초록 재킷 소매 끝에 뭔가 묻어 있었다. 짬뽕 국물 같았다.

"십 분 됐어요. 두드리시나 해서 기다렸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슬리퍼 소리가 여기서 멈췄잖아요. 숨소리도 들리고요."

그걸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낮 동안 공들인 톤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먹을 천천히 내렸다. 내린 손을 어디 둘지 몰라서 가디건 주머니에 꽂았다.

"어디까지 들었어요."

형사 같지 않았다. 목이 살짝 갈라졌다. 스물일곱 번째 테이크 때 내 목소리가 꼭 이랬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먼저 빠져나갔다. 이 사람은 눈부터 빠진다. 복도 등이 지직거렸다. 그는 문틀에 손을 얹고 잠깐 내 어깨 뒤를 봤다. 내 집 문, 거기 붙은 노란 종이들을.

"대사만 들었어요."

나는 그 사람을 쳐다봤다.

"대사만요."

"네."

"봄부터요?"

"대본 외우시는 건 봄부터 들었죠." 그가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 "대사만요. 벽이 그렇게 골라서 들려요. 희한하게."

거짓말이었다. 내가 스물일곱 번 틀린 애라서 하는 말인데, 나는 사람이 대사 치는 걸 구별한다. 저건 연습을 아주 많이 한 대사다. 그 사람도 내가 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거짓말 하나 때문에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도, 둘 다 알았다.

"그래요." 나는 말했다. "그럼 됐어요."

"네."

"앞으로 '근데' 앞에서 어쩌고 하는 쪽지 붙이지 마요. 기분 나빠요."

"쉬던데요, 오늘도."

"오늘 뭘 들었다고 그래요!"

"밴에서 내리면서 한 번,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이요. 엘리베이터는 소리가 울려서요."

나는 돌아서서 여덟 발자국을 걸었다. 문을 닫을 때 쾅 소리가 났다. 1209호 쪽에서 "밤에 문 살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4화 사진 3

화요일 오후 두 시, 제작사 회의실. 나는 곽 형이 사 온 꽈배기 봉지 옆에 앉아 있었다.

긴 탁자 끝에 남궁 감독이 있었고, 맞은편에 음악 감독과 레이블 사람이 하나, 그 옆에 철거예정 멤버들이 앉았다. 백유라가 나를 보더니 눈썹을 한 번 올렸다. 도건우는 초록 재킷을 입고 기타 케이스를 무릎 사이에 세운 채, 처음 보는 건물에 온 사람처럼 벽의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자, 자." 곽 형이 설탕 묻은 손을 털며 일어났다. "이쪽은 저희 정하준이고요. 8부 증언 신 주인공. 이쪽은 기타 치는 도건우 씨. 둘이 동갑이야, 하준아. 인사해. 친해져."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인사 한 번에 조용해질 일은 아니었는데, 내 귀에는 조용했다.

그 사람이 일어섰다. 탁자 너머로 고개를 공손히 숙였다. 지난 일요일에 김치전 앞에서 본 그 각도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도 일어섰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공연 영상 봤어요. 잘 치시던데요."

"감사합니다. 가끔 틀려요."

"그래 보이진 않던데요."

백유라가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유라 씨는 주먹으로 제 어깨를 두 번 치고 말했다.

"죄송해요. 물이 처음 뵙는 물이라."

남궁 감독이 안경을 벗어 닦기 시작했다. 회의실의 모두가 등을 곧게 폈다. 그는 다 닦은 안경을 쓰고 건우 씨를 봤다.

"그 곡. 공연 때 들었는데, 끝이 없던데."

"네. 아직 끝을 안 썼어요."

"가사는?"

건우 씨가 대답하기 전에 백유라가 턱으로 그를 가리켰다.

"쓰는 중이래요. 요즘 노란 종이에 뭘 자꾸 적던데."

꽈배기를 집던 손이 멈췄다. 건우 씨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감독님, 안경 어디 거예요? 좋아 보이는데."

"...곤란하면 말 돌리는 건 안 고쳤네." 백유라가 중얼거렸다.

남궁 감독은 안경을 만지다 말고 이번에는 내 쪽을 봤다.

"하준 씨. 그 곡이 네 증언 끝나고 나온다. 네가 안 되면 곡도 필요 없어. 34쪽은?"

모두가 나를 봤다. 그 사람도.

"됩니다."

내 입이 그렇게 말했다. 곽 형이 꽈배기를 입에 문 채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날 밤 열두 시, 나는 방바닥에 앉아 벽을 노려봤다.

곡은 평소처럼 올라왔다가 평소처럼 틀렸다. 멈췄고, 잠깐 조용했다. 그 잠깐이 이제는 전과 같은 잠깐이 아니었다. 저 사람이 저기 앉아서 귀를 대고 있는 시간이니까. 알고 나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내 방에서 내 대사를 하는데 무대에 선 기분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된다고 말해 버렸으니까.

"34쪽 넷째 줄, 다시."

목소리가 작게 나왔다.

"문 앞까지 갔어. 근데..."

숨을 쉬었다. 들으라고 쉰 건 아니었다. 나는 대본으로 무릎을 쳤다. 그때였다.

똑.

벽에서 소리가 났다. 손가락 마디로 친 소리, 딱 한 번.

나는 벽을 봤다. 벽은 벽이었다. 다시 시작했다.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못..."

똑.

이 인간이. 나는 일어나서 주먹으로 벽을 쾅 쳤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위층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벽 너머는 잠잠해졌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앉았는데 현관 쪽에서 사각 소리가 났다. 문 아래 틈으로 노란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한 번은 다시, 두 번은 다음. 제가 방금 정했어요. 싫으면 세 번 치세요. 그럼 안 칠게요."

복도에 나가 보지 않아도 알았다. 저쪽 문은 이미 닫혔을 거다. 나는 종이를 들고 벽 앞으로 돌아왔다. 가디건 소매를 걷고, 주먹을 쥐고, 벽에 댔다. 세 번이면 끝이다. 어려울 게 없다. 하나, 둘, 셋. 내일부터 다시 조용한 방에서 혼자 틀리면 된다.

조용한 방이 어떤지는 잘 알았다. 공연 날 밤에 겪었으니까. 틀릴 핑계가 없어서 더 안 되던 그 방.

나는 주먹을 풀고 바닥에 앉았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4화 사진 5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똑.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못."

똑.

이상한 건 그 소리가 하나도 다그치는 것 같지 않다는 거였다. 남궁 감독의 넘어가는 얼음물 같고, 곽 형의 해 봐는 뒤차 경적 같은데, 벽 너머의 똑은 그냥 똑이었다. 틀렸네요, 그럼 또 해요. 그뿐이었다. 스물일곱 번 틀리던 날에는 틀릴 때마다 현장의 숨소리가 하나씩 줄었다. 여기서는 내가 몇 번을 틀려도 저쪽에서 똑 하고 한 번 쳐 줬다.

일곱 번째쯤에서 욕이 나왔다. 똑. 욕에도 치네. 나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혼자 방바닥에 앉아서, 벽에 대고. 이것도 들렸을 거다. 대사만 듣는다는 사람한테.

열 번째, 열한 번째. 시계가 한 시를 넘겼다. 위층이 조용해졌고 수도관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대본은 이미 덮었다. 눈을 감으니 복도가 보였다. 불빛이 새던 문틈, 한 뼘 앞에서 멈춘 내 주먹. 숨이 슬슬 돌아왔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외운 게 아니라, 아까 그 복도에서 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처럼.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못 두드렸어."

방이 조용했다.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믿기지 않아서 나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끊기지 않았다. '근데' 앞에서 숨도 안 쉬었다. 반년 동안 한 번도 끝까지 간 적 없는 문장이 그냥 방바닥에 툭 떨어져 있었다.

벽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일 초, 이 초. 평소의 그 잠깐보다 훨씬 길었다. 혹시 잠들었나. 하필 이럴 때. 나는 벽 쪽으로 몸을 돌려 손바닥을 댔다. 벽지가 차가웠다.

똑.

똑.

다음.

나는 벽에 손을 댄 채로 한참 웃었다. 소리는 안 냈다. 낸다고 안 들릴 벽도 아니지만.

다음 줄은 없었다. 그 대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나는 대본을 끌어안고 그대로 잠들 뻔하다가, 눈을 감기 직전에 벌떡 일어났다. 뭔가가 이상했다.

방금 그 두 번은 왜 그렇게 늦었을까. 그 사람은 왜 곧바로 치지 않았을까. 그 일 초, 이 초 동안 벽 너머의 사람은 뭘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욕에도, 웃음에도 칠 줄 알면서, 왜 내가 진짜로 숨을 고를 때만은 한 번도 치지 않았는지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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