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파람에는 바람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흘 동안 차에서, 화장실에서, 대기실에서 연습했다. 가수라는 사람이 음정은 고사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입에서 나오는 건 김 빠지는 후, 소리뿐이었다. 실장님은 룸미러로 내 얼굴을 보다가 창문을 내렸다.
"너 환기하니?"
그래도 실험은 실험이다. 토요일 저녁, 남은 날짜는 나흘이었다. 나는 늦봄 B룸 문을 일부러 천천히 열면서 그 후, 소리를 냈다. 태연한 얼굴로. 평생 그러고 살아온 사람처럼.
유리 안쪽 소파에서 유한결이 연필을 깎고 있었다. 콘솔 앞에는 마두식 엔지니어가 앉아 있었다. 그분이 귤을 까다 말고 나를 봤다.
"가스 새."
"휘파람인데요."
"밸브 봐."
소파 쪽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깎던 연필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만 네 번 더 불었다. 대기실에서 한 번, 자판기 앞에서 한 번, 그가 지나갈 때마다 부지런히. 다섯 번째에는 귤 껍질이 날아왔다. 마두식 엔지니어가 평생 처음 던진 물건이었을 거다.
다음 날 아침, 문 아래 봉투.
설탕을 반 넣고, 스틱을 세우고, 숨을 고르고, 읽었다. 1절 그대로. 2절로 내려갔다. 오른쪽에 꽂았다가 세 번 떨어뜨리는 사람. 그 줄이 없었다. 지운 자리에 연필 자국 한 줄 없이 원래 가사로 돌아가 있었다. 휘파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조금 실망했고, 그다음 숨이 멎었다.
여백에 연필 글씨가 있었다. 수정 불가 이후 처음 보는 그의 메모였다. 내 빨간 펜이 간 적 없는 자리에 혼자 적혀 있었다.
"휘파람은 안 씁니다. 못 부시잖아요.
오른쪽 귀도 지웠습니다. 펜이 불쌍해서요.
없는 건 안 씁니다. 그 사람 얘기만 씁니다."
귀가 먼저 빨개졌다. 커피가 코로 넘어갈 뻔했다. 그러니까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왜 하는지, 오른쪽 귀부터 전부. 내가 그를 시험하는 동안 이 사람은 시험지를 들여다보며 채점을 하고 있었다.
빨간 펜을 뽑았다. 메모 아래 뭐라고 쓰려고 펜 끝을 종이에 댔는데 점만 하나 찍혔다. 그렇게 쉽게 적던 빨간 글씨가 나오지를 않았다. 고쳐 달라고 할 데가 없었다. 틀린 데가 없었으니까.
한참 뒤에 겨우 썼다.
"그 사람도 나름대로 노력한 거예요."
그걸 봉투에 넣어 A룸 문 아래로 밀어 넣고 돌아서다가, 복도 저쪽에서 귤을 들고 오는 마두식 엔지니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분은 내 손을 보고 문 아래를 보고 나를 봤다. 그리고 귤을 하나 내밀었다.
그날 귤은 좀 셨다.
그 답은 말로 돌아왔다. 그날 밤 취재 자리에서, 그는 평소처럼 연필을 돌리며 물었다.
"그 사람은, 모르는 척을 잘하는 편입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내 무릎이 혼자 움찔했다.
"가수로서 의견을 드리자면, 꽤 잘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네. 연기 수업도 받았을 거예요."
"휘파람 수업은요."
나는 쿠션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쿠션 너머로 짧은 웃음소리가 났다. 아주 짧았는데, 나는 그 소리를 음으로 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은 미에서 시작해서 반음 올라갔다가 그냥 사라지는 소리.
쿠션을 내렸을 땐 그가 벌써 웃음을 지운 뒤였다. 우리는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아주 성실하게 그 사람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은 비 오는 날 목이 잠기는 걸 속상해한다. 그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안경을 닦는다. 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후렴을 반 키 낮춰 부른다. 내가 언제 들켰는지도 모를 일을 그는 하나씩 말했고, 나는 하나씩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했다. 살면서 얼굴이 가장 오래 뜨거웠던 인터뷰였다. 그런데 마지막 줄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뭐라고 답할 것 같습니까."
그 질문은 늘 내가 받았다. 나는 매번 안경을 닦았다.

남은 날짜가 이틀이 된 월요일 저녁, 석혁이 늦봄에 왔다.
수요일로 잡혔던 일정보다 먼저 온 거였다. 낙타색 코트에 은빛이 섞인 머리, 시상식 화면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차민영 이사님 뒤에서 들어와 마두식 엔지니어에게 고개를 숙이고, 귤을 하나 받았다. 나는 그 귤을 받아 든 외부인을 처음 봤다.
"대기만 할게요. 혹시 몰라서. 유 작가가 쓰면 제일 좋죠."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콘솔 위 가사지를 들어 읽었다. 유한결은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석혁은 끝까지 읽더니 종이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좋네. 좋은데, 이건 내가 손 못 대겠다. 이틀이면 고치는데, 이틀이면 이게 다른 노래가 돼요."
"그래도 수요일 지나면 그쪽으로 갑니다, 작가님." 이사님이 말했다.
"예, 일은 일이니까요."
방 안 공기가 납작해졌다. 한결이 일어나 말없이 나갔다. 나는 잠시 있다가 그 뒤를 쫓으려고 가사지를 집어 들고 비상계단 쪽으로 돌아섰는데, 층계참에서 코트 자락을 만났다. 석혁이 언제 나왔는지 난간에 기대 있었다.
"서지완 씨. 잠깐만."
"네."
"나 유 작가 팬이에요. 그 사람이 쓴 곡 전부 들었거든. 지완 씨 곡 말고 남 준 것까지."
그가 귤을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작년까지는 깨끗한 작사가였어요. 잘 쓰는데 사람이 없어요. 누가 불러도 맞는 가사. 그래서 오래 가겠다 싶었지. 근데 올봄부터 달라졌더라고. 지완 씨 3월 곡까지는 없어요, 그 사람이. 4월 말에 낸 그 곡 있잖아요. 그 2절에 처음 나와요. 빨간 펜."
나는 숨 쉬는 걸 잊었다. 그 곡의 2절을 머릿속으로 돌렸다. 백 번 넘게 부른 가사였다. 빨간 무언가가 정말 있었다. 그냥 색깔인 줄 알았다.
"봄에 뭔 일 있었어요?"
"……없었는데요."
"그래요?"
석혁은 아주 친절하게, 그러나 전혀 믿지 않는 얼굴로 귤을 마저 먹었다.
"있었을 텐데."
그가 내려가고 나서도 나는 층계참에 서 있었다.
없었다. 올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앨범을 준비했고, 녹음을 했고, 4월 말에 그 곡을 냈다. 작가님은 언제나처럼 11시 59분에 가사를 보냈고 나는 언제나처럼 빨간 펜을 댔다. 일 얘기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없어야 맞았다.
계단 아래쪽에서 찬 공기가 올라왔다. 어디선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를 듣다가 멈칫했다.
여기였다.
이 계단.
벽에 붙은 작은 등을 올려다봤다. 그 등이 깜빡이던 밤이 있었다. 4월 첫 주, 생방송을 망친 날. 고음에서 목이 갈라졌고 화면에 그대로 나갔고, 나는 집에도 안 가고 늦봄 비상계단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불 꺼진 계단은 울기 좋았으니까.
그때 누가 내 옆에 커피를 놓고 갔다. 아무 말 없이. 나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스태프 누군가겠거니 했다. 다 식어서야 한 모금 마셨고, 그제야 뭐가 들어갔는지 맛을 봤다.
달았다. 딱 반 봉지만큼.
손에 쥔 가사지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비상구 문이 저 위에서 삐걱 열렸다.
"지완 씨."
내려다보는 사람은 검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든 것은 종이컵 두 개였다.
올봄,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딱 한 번 울었다. 나만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