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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1화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1화 사진 1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밤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밤 열한 시 사십 분쯤 시작해서 새벽 한 시면 끝나는데, 그사이 같은 곡을 열댓 번은 친다. 못 치는 사람이면 차라리 낫겠다. 잘 친다. 앞부분은 물 흐르듯 가다가 끝날 듯 끝날 듯 올라가서, 꼭 그 자리에서 한 음이 어긋난다. 그러고는 멈춘다. 잠깐 조용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이 아파트는 나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다. 벽도 그만큼 지쳤다.

그날 밤 나는 방바닥에 앉아 대본을 외우고 있었다.

"34쪽 넷째 줄, 다시."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고 시작하는 게 버릇이다.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못 두드렸어."

이 두 문장이 안 외워지는 배우가 세상에 있다. 나다.

앞 대사는 줄줄 붙는데 여기만 오면 머리가 하얘진다. 겨우 "문 앞까지"를 넘기려는 순간 벽 너머에서 곡이 올라왔다. 끝날 듯, 끝날 듯. 틀렸다. 내 문장도 같이 미끄러졌다.

네 번째로 판이 깨지자 대본을 덮었다.

서랍에서 노란 포스트잇을 뜯긴 했는데, 막상 쓰려니 뭐라고 쓰나 싶었다. 조용히 해 주세요? 봄부터 참은 세월이 아깝다. 그래서 내가 아는 유일한 지식을 썼다. 단역 오디션 때문에 코드 몇 개를 배운 적이 있다. 오디션은 떨어졌고 코드만 남았다.

"거기 G 코드예요."

대본을 옆구리에 끼고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복도 등은 반쯤 나갔고, 화분 옆 자전거는 몇 년째 같은 자리다. 1208호 앞에 서서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봤다. 이 시간에 누가 있다고. 그래도 봤다. 문 한복판에 쪽지를 꾹 눌러 붙이는데 손끝이 괜히 떨렸다.

여덟 발자국 돌아와 문을 닫고서야 생각이 났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신인 배우 정하준. 이름을 대면 다들 "아, 그..." 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 뒤에 올 말을 나는 안다.

스물일곱 번 틀린 애.

지난겨울 단막극 현장에서 짧은 대사 하나를 스물일곱 번 날렸다. 누가 찍은 영상이 돌았고, 슬레이트 숫자만 친절하게 확대한 짤이 됐다. 댓글은 대체로 웃겼다. 남의 일이었으면 나도 웃었을 거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곽 형의 밴 안.

곽태식. 우리 회사 모퉁이컴퍼니의 매니저이자 운전기사이자 소속 배우 세 명 전원의 보호자다. 그는 삼각김밥 봉지를 이로 뜯으며 말했다.

"남궁 감독님이 34쪽 또 물어보시더라."

"다 외웠어요."

"해 봐."

"운전하세요."

"신호 걸렸어. 해 봐."

나는 창밖을 보고 숨을 골랐다.

"문 앞까지 갔어."

곽 형이 밥알 씹는 소리만 들렸다. 신호가 바뀌었다. 뒤차가 빵 하고 울렸다.

"근데?"

"근데..."

"야." 백미러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8부 증언 신이다. 너 그거 하나 보고 붙여 준 배역이야. 또 스물일곱 번 가면 사람 바꾼대. 농담 아니고 어제 전화로 그러셨어."

드라마 제목은 「서쪽 창의 증인」. 나는 피고인의 동생이다. 형이 무너지던 날 형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동생. 네 쪽짜리 증언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그 두 문장이다.

"왜 안 되는 건데, 그게."

"옆집이 기타를 쳐요. 맨날 같은 데서 틀려요."

"그거랑 네 대사랑 무슨 상관인데."

"제가 거기서 같이 틀려요."

"그럼 안 들으면 되잖아."

곽 형은 김밥을 마저 밀어 넣었고 나는 대꾸를 못 했다.

그러게. 나는 그걸 왜 그렇게 열심히 듣고 있었을까.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1화 사진 3

그날 밤 촬영을 마치고 12층에 내렸더니 우리 집 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다음 마디는요?"

복도 한가운데서 혼자 "허" 소리를 냈다. 사람이 항의를 했는데 과외로 받아들였다.

답을 안 쓰면 지는 것 같았다. 코드표를 뒤져 다음 마디를 찾아 적었다. 다음 날 또 답이 왔다.

"손가락이 안 닿아요."

"새끼손가락 쓰세요."

"야식은 뭐 드세요?"

"그건 왜 물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에 귤 두 개 든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야식 아니면 간식이요."

나는 귤을 까먹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그러고는 답을 썼다.

어느 순간부터 쪽지를 안 떼게 됐다. 아침마다 커피 잔을 들고 나와 문 옆에 기대서서 어제 온 걸 한 번 더 읽었다. 글씨가 의외로 단정한데, 끝이 조금씩 말려 올라간다. 웃으면서 쓴 사람 글씨 같았다.

"탤런트 총각."

1209호 문복순 여사가 장바구니를 끌고 지나가다 멈췄다. 이 층에서 제일 오래 산 분이고, 복도의 모든 일을 관리실보다 먼저 안다.

"거기 페인트 벗겨지면 관리실에서 뭐라 해."

"네, 조심할게요."

"새끼손가락은 그 집 총각이 잘 쓴대?"

커피가 목에 걸렸다.

"...읽으셨어요?"

"복도에 붙여 놓은 걸 안 읽어? 일일드라마보다 낫더구먼."

여사님은 그대로 바퀴 소리를 내며 가 버렸다.

그렇게 3주.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문으로 편지를 썼다.

정말 얼굴을 몰랐다. 그 사람은 늦게 들어오고 나는 새벽에 나갔다. 봄에 옆집 이사하던 날, 엘리베이터에서 커다란 상자를 든 누가 문을 잡아 준 기억은 있다. 대본을 보느라 고개를 안 들었다. 고맙다는 말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궁금하지 않았느냐면, 궁금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기다릴 만큼은 아니라고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그 마디는 여전히 틀렸다. 이상한 건 내가 더 이상 화가 안 난다는 거였다. 틀리고, 멈추고, 잠깐 조용하고, 다시. 그 소리가 안 나는 밤에는 오히려 34쪽이 더 안 됐다.

금요일 아침 쪽지는 이랬다.

"오늘 밤은 안 칩니다. 푹 외우세요."

그날 오후 곽 형이 짐을 가지러 12층까지 올라왔다가 우리 집 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야. 너 사채 썼냐?"

"아니에요."

"그럼 이게 뭔데. 독촉장이야?"

"이웃끼리 그냥..."

곽 형은 한 장을 떼서 읽었다. "'새끼손가락 쓰세요.'" 다른 한 장을 읽었다. "'오늘은 짬뽕이요.'" 그러고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쳐다봤다.

"너 안 되겠다. 나가자."

"저 34쪽 해야 돼요."

"그 얼굴로 3주째 방에만 있으면 그게 다음 짤이야. 오늘 합정 쪽에 공연 하나 있어. 감독님이 OST를 인디 쪽에서 찾는대. 가서 눈도장도 찍고, 머리도 좀 식히고. 음료는 내가 산다."

"형이 산다고요?"

"입장료에 포함이야."

그래서 나는 가디건을 걸치고, 모자를 눌러쓰고, 끌려갔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1화 사진 5

금요일 밤, 작은 지하 공연장.

계단을 내려가자 곰팡이 냄새랑 맥주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쉰 명쯤 들어가면 꽉 차는 곳이었다. 곽 형은 아는 사람을 찾으러 사라졌고, 나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콜라를 받아 맨 구석 기둥 옆에 섰다. 얼굴을 안 들켜도 되는 자리. 나한테는 그게 제일 좋은 자리다.

앞 팀이 끝나고 다음 밴드가 올라왔다. 이름이 철거예정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누가 "철거 언제 해요!" 하고 외쳤고, 베이스를 멘 여자가 "네 집부터" 하고 받았다. 사람들이 웃었다.

기타리스트는 초록색 작업 재킷을 입고 있었다. 곱슬기 있는 머리가 조명에 젖어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줄만 봤다.

첫 네 마디가 나왔다.

나는 음료를 든 채 굳었다.

그 곡이었다. 매일 밤 벽 너머로 듣던 바로 그 곡. 앰프를 타니 소리가 훨씬 컸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곡의 숨 쉬는 자리까지 안다. 내 대사보다 잘 안다.

끝날 듯, 끝날 듯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컵을 꽉 쥐었다. 얼음이 달각거렸다. 그 자리가 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

손가락이 그 마디를 물 건너듯 건너갔다. 새끼손가락까지 아주 편안하게. 틀리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3주 동안 "손가락이 안 닿아요" 소리를 듣고 코드표를 뒤진 그 자리를, 저 사람은 눈도 안 뜨고 넘어갔다.

어느새 돌아온 곽 형이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요즘 뜨는 밴드 기타야. 도건우. 되게 잘 치지?"

도건우.

그 이름을 입속으로 굴려 봤다. 1208호 문에는 이름이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곤 짬뽕을 좋아한다는 것과 귤을 비닐봉지째 건다는 것뿐인데, 그게 저 사람이라고?

아닐 수도 있잖아. 같은 곡을 치는 사람이 세상에 둘일 수도 있지. 옆집 사람이 저 사람 팬일 수도 있고.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배우는 대본 없이도 시나리오를 잘 쓴다.

곡이 후반으로 넘어갈 때였다.

긴 연주가 지나고 후렴이 한 번 더 돌기 시작했다. 무대 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공연 내내 줄만 보던 사람이 처음으로 앞을 봤다. 앞줄을 지나, 가운데를 지나, 기둥 옆 어두운 구석까지.

객석 구석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모자를 썼는데. 불도 꺼진 자리인데.

저 사람이 내 얼굴을 어떻게 알지.

끝날 듯, 끝날 듯. 곡이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해야 했는데, 스물일곱 번 틀릴 때도 못 피하던 게 시선이다. 그 사람은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디가 왔다.

그가 나를 똑바로 보면서,

일부러 한 음을 틀렸다.

아주 작게. 다른 사람은 모를 만큼. 쉰 명 중에 그걸 알아들은 사람은 둘이었을 거다. 치는 사람과, 매일 밤 벽 너머에서 그걸 들은 사람.

베이스 치던 여자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봤다. 그는 보지 않았다.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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